영화의 가장 흥미 있는 점은 살인범이 누구인지 보다 살인범의 심리상태였다.
연쇄살인범은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사후 처리를 했는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마치 전화가 울리면 자연스레 전화기에다 대고 "여보세요"를 하듯이 평온해 보였다. 연쇄살인범은 악랄하다기 보다는 그냥 죄의식이 없는 싸이코 패스였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하면 내가 무슨일을 저지른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무지의 공포감이라고 해야하나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공포감이 밀려들었다고 해야 맞을 것 이다.
충격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관객은 충분히 상상했고, 무서워 했다.
분명히 어떻게 죽였는지는 감이 온다. 그러나 그 모습은 영화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연쇄살인범의 증언과, 살해 후 흔적들 이다. 마치 기술적으로 정말 잔인한 부분을 빼고 편집을 한 것 처럼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잔인하고 공포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의 흔적들을 보고 상상하고, 살인범의 얘기만 듣고 또 상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충분히 언제, 어떻게, 어떤식으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 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공포스러운 것은 살인범이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이 너무도 공포스럽게 만든다. 마치 관객이 살인범이 되서 어떻게 죽였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살줄 알아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정말 죽였다.
살줄알았던 비련의 보도방 아가씨가 결국 잔인하게 죽었다. 탈출에 성공하고 범인의 집에서 도망나올 당시 아무도 없는 거리가 어쩌면 그녀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복선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전부 살아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국 죽였고, 죽었다. 관객들의 안타까움 마음을 살인이라는 잔인함으로 뒤 덮어 버렸다.
그럼 이쯤 보면 재밋어 보이는데 엇갈린 반응들은 뭐냐?
그게 좀 문제다. 영화를 보고 난후 대부분 사회적 코드를 집어내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회적 코드는 이른바 성매매의 어두운 부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에어백도 우리사회는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다. 포주가 있고 거기에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있으며, 그들은 굴복해야 하고 어두운 곳에 버려지기 마련이다.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을 미리 갖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를 예방할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영화는 영화자체에 모순이 있다.
영화에서는 처음엔 매우 모멸찬 포주가 등장하다가 갑자기 가련하고 인간적이며, 복수심에 불타는 포주로 바뀐다. 그럴 수 있다. 세상에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밤에는 차갑고 돈 밖에 모르는 악랄한 포주가 일요일에는 자신의 아들,딸들과 놀이터에서 평범한 아빠처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성은 없어보인다. 이것이 영화에서 말하는 인간적인 모순이 아닐까 한다. 또한 영화를 보고 난후 이러한 인간적인 모순에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영화를 영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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